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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STITUTE OF EDUCATION 부산대학교 평생교육원 21세기 지식기반사회의 당당한 구성원을 배출하는 교육의 터전

수강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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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도예 수료후기

f*sa1207 2012-06-22 821
180.231.244.43
설레는 수요일     

 콩! 닥! 콩! 닥!
 설레는 수요일이다.                          
 수요일이면 구름신을 신은 듯 발걸음이 사뿐해진다. 님을 만나러 가는 길이 이러할까?
 몇 년 전 나는 평생 하고 싶었던 도자기 공예에 잠시 발을 담근 적이 있었다.
 그러나 직장인에게 한낮의 여가시간이란 장마철의 반짝 맑음과 같아서 배움이 이어지기 힘들었다. 하지만 오래전부터 꼭 해보고 싶었던 일이라 저녁에 배울 수 있는 곳을 찾았으나 그마저도 여의치 못했다.  그렇게 나의 도예에 대한 갈증은 가뭄에 마른 논바닥같이 마주하기 애달픈 그 무엇이었다.

 그러던 중, 부산대학교 평생교육원 소식지를 접하게 되었고 직장인을 위한 야간 도자기 공예과정이 있음을 알고 눈이 번쩍 뜨였다. 서둘러 수강신청을 하고도 혹여나 이 불경기에 인원이 부족하여 폐강이 되면 어쩌나하고 얼마나 마음을 졸였는지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나의 기우에 불과했다. 부산대에 도예과정이 생긴 이후 벌써 2기가 수료를 했고 내가 3기 등록생이 되었던 것이다.


 드디어 첫 수업일!
 설레는 마음으로 학교로 향했다.
 부산 사람이라면 누구나 아는 ‘부산대학교’는 도심 한가운데에 자리한 고마운 ‘숲’이다. 그 숲에서도 도예반이 자리한 곳은 명당 중의 명당이다.  금정산 자락에서 흐르는 참한 물줄기가 부산대 역사와 함께한 고목과 바위의 등을 토닥토닥 쓸어내리고, 코끝을 스치는 상쾌한 바람 한 줌에 바스락 바스락 살 부비는 초록들이 함께 하는 곳, 저녁이면 하루를 갈무리하는 풀벌레와 새들의 세레나데 또한 심금을 울린다.

 
 그렇게 첫 날은 동네 통장님같이 편안하고 푸근한 허 일 교수님과, 함께 도예를 배울 동기들과의 반가운 인사로 시작되었고, 두 번째 만남부터 우리는 바로 준비되어 온 도구들과 흙을 만질 수 있게 되었다.
 십대 여학생 같이 뽀얀 살결과 도도한 느낌의 백자토, 거칠고 투박한 경상도 사나이 같은 옹기토,  한국의 어머니 같이 푸근하고 넉넉한 분청토.
 우리는 그렇게 아기 속살같이 보드랍고 또는 늙은 어머니의 손마디 같이 거친 흙을 만지며 자신의 마음을 빚어내고 있었다.
 그러고 있자면 머릿속을 채웠던 잡념들은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고, 일상에서 생긴 마음의 생채기들도 마치 약손인냥 마음을 쓰다듬는 듯 했다. 그렇게 내게 도자기 공예는 단지 실용적인 그릇 하나 만드는 것이 아니었다.
 흙을 만지며 밖으로만 치닫는 에너지를 안으로 모아 내 안을 살피게 하고, 어딜 가나 넘쳐나는 말의 홍수 속에서 조용히 입을 다물어 한마디 한마디를 여물게 하며, 빨리 빨리의 외침 속에서 느리게 호흡하고 명상하며, 그 누구와의 경쟁도 없이 오로지 내 안을 살필 수 있는 귀한 여백이 되었던 것이다.
그렇게 무엇이든 재빨라야 뛰어나고, 남을 이겨야만 내가 살아남고, 눈으로 보이는 가치를 부러워하는 게 오늘날의 현실이다. 그렇게 죽어라 달려야 하는 다람쥐 쳇바퀴 속에서 과감히 도자기 공예 속으로 뛰어 내린 일은 나로서도 참으로 잘한 일. 두고두고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 싶은 심정이다.

 
 그 충분함 속에 바람이 하나 있다면,  도자기 공예는 수업 특성상 각자 진도에 맞게 일대일 수업을 진행한다. 진도에 맞추어 모두가 따라가는 게 아니라, 개개인의 걸음에 수업 진도를 맞춘다. 얼만큼 많이 만들어내는가가 아닌, 하나를 만들더라도 온 마음과 정성을 다해서 스스로 만족할 수 있는 작품이 나오는가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 학기를 끝내고 재수강을 하는 사람에게는 처음 수강을 하는 이들과는 차별화된, 좀 더 다양한 표현기법과 난이도가 업그레이드된 수업 내용으로 배움의 색깔이 다채로워지기를 바란다. 그리하여 배움의 묘미가 감소되지 않고 이 귀한 인연의 끈이 두고두고 이어지기를 소망한다.


 그렇게 지금은 티끌에 불과한 배움이 *만 시간의 법칙 처럼 세월을 쌓아 나가다 보면 드러내 놓아도 부끄럽지 않을 노후의 버팀목이 되어줄 것이고, 도자기 공예로 정년 없는 평생직장을 꿈꿔도 되지 않겠나.
가다가 힘이 들면 천천히 쉬어 가더라도 가던 걸음을 멈추지 않아야 가능한 일이다. 그렇게 강산이 새 옷을 갈아입을 만큼 시나브로 가다가 문득 내가 걸어온 길을 돌아다 봤을 때 좋아하는 일에 파묻혀 편안한 주름 만들어 가며 늙어갈 훗날이 떠오른다.

그러면 나도 모르게 실룩거리는 입 꼬리를 제자리로 잡아당기느라 즐거운 씨름을 한다.
그렇게 수요일은 님을 만나러 가는 길 인양 발걸음이 춤을 추고, 그런 수요일이 있어
나의
일주일은 그득-하다.




*참조: 다니엘 레비틴 박사의 ‘만 시간의 법칙’

무슨 일이든 최소 1만 시간은 연습을 해야 뇌가 거기에 적응하고 한계(限界)를 넘어서게 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하루 세시간이면 십년이 되고, 택시기사가 하루 10시간을 운전한다면 삼년이 되는 것을 말한다. 단 아주 열심히 했을 경우 그렇다.